목차
▪️ 박서보의 이름으로, 박서보 이후를 묻다
▪️ 연희동 박서보미술관 개관, 왜 단독전 아닌 흐엉 도딘과의 2인전인가
▪️ 한지 묘법과 광물 안료의 조우, '비움 그 충만'의 조형적 깊이는 어떻게 다른가
▪️ 8미터 높이 큐브에 걸린 백색 묘법 3점, 관람자 움직임과 빛이 완성하는 공간
▪️ 조선 백자와 프랑스 눈의 만남, 같은 백색 회화가 품은 서로 다른 삶의 기억
▪️ 미술관의 진짜 시험대, '플랫폼'의 선언은 다음 전시부터 검증된다
▪️ 표 1. 박서보미술관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 대표 출품작 정보
▪️ FAQ
▪️ [전시 상세 정보]
▪️ [아티스트 소개: 박서보]
▪️ [아티스트 소개: 흐엉 도딘]
▪️ [전문 용어 사전]

박서보의 이름으로, 박서보 이후를 묻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박서보가 생전에 치열하게 작업을 이어가던 공간 바로 옆에 기품 있고 수려한 건물이 마침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박서보미술관은 어제(20일) 개관식을 열고, 오늘(21일) 정식 개관과 함께 일반 관람을 전격 개시한다.
미술관은 공식 출범과 함께 개관 기념전인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을 2027년 1월 3일까지 개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시·연구 플랫폼을 표방하며 출발한다. 미술관은 단일 작가의 작품을 보존·전시하는 기념 공간에 머물지 않고, 전시·교육·연구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연희동 박서보미술관 개관, 왜 단독전 아닌 흐엉 도딘과의 2인전인가
미술관의 정식 출범을 장식하는 첫 전시가 박서보의 대규모 개인전이 아닌,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 흐엉 도딘과의 2인전이라는 점은 박서보미술관의 방향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두 작가의 인연은 개관을 앞두고 새롭게 만들어진 설정이 아니라 2023년의 실제 만남에서 출발한다. 당시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던 흐엉 도딘은 박서보가 생활하고 작업하던 연희동 공간에서 그를 만났다. 두 작가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지녔지만, 통역을 거쳐 작업과 자연에 대한 감각을 나눴다.
박서보가 세상을 떠난 뒤 흐엉 도딘은 그 만남을 기억하며 〈X.K.N.31〉(2025~2026)을 제작하고 ‘오마주 투 박서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박서보의 2023년 백색 묘법 3점과 함께 SPACE 3에서 소개된다.
박서보미술관이 흐엉 도딘을 개관전의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박서보를 역사적 인물로만 기념하기보다, 그의 회화적 질문을 다른 작가의 작업과 함께 다시 읽으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술관은 박서보의 작업을 한국 단색화의 대표 작가라는 미술사적 위치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문화와 지역을 넘어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온 예술적 실천으로 새롭게 읽고자 한다

한지 묘법과 광물 안료의 조우, '비움 그 충만'의 조형적 깊이는 어떻게 다른가
이번 전시의 핵심 논리이자 중심 축인 ‘비움’과 ‘충만’은 표면 위에서 장식적인 요소를 극도로 덜어냈을 때 도달하는 숭고한 깊이에 관한 이야기다. 박서보는 물에 불린 한지를 캔버스 위에 겹겹이 얹고 연필이나 도구로 선을 반복해서 긋고 한지를 정성스럽게 밀어내는 신체적 노동의 시간을 거쳐 조형적 질서를 완성한다.

반면 흐엉 도딘은 광물 안료를 여러 겹 쌓아 화면의 깊이와 빛을 구축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X.K.N.31〉의 경우, 나무에 마운트한 캔버스에 유기 바인더와 천연 안료를 사용해 제작되어 화면의 깊숙한 내부로부터 정갈한 빛이 스스로 우러나오게 만든다.
한 사람은 몸의 운동을 통해 화면 위에 세로 골의 리듬과 호흡의 흔적을 뚜렷이 남겨두고, 다른 한 사람은 안료의 영롱한 층위를 부드럽게 누적해 빛을 침전시킨다. 필요 없는 요소를 극도로 제거하는 뺄셈의 과정을 통과해 마침내 완성된 이들의 표면은 가벼운 공허가 아닌, 오랜 물리적 행위가 구축한 진중한 조형적 밀도로 충만하다.

8미터 높이 큐브에 걸린 백색 묘법 3점, 관람자 움직임과 빛이 완성하는 공간
지하 2층에서 출발하는 전시 동선은 각 층마다 설계된 시각적 흐름과 긴밀하게 조응하며 감상의 밀도를 점진적으로 높여간다. 도입부인 지하 2층 SPACE Ø(스페이스 제로)에서는 두 거장의 독창적 조형 세계가 만개하기 시작한 1990년대의 대표작들을 한 벽면씩 교차하며 병치해 이색적인 대화를 유도한다.
이어 2층 SPACE 2로 들어서면 흐엉 도딘의 미디어 영상과 더불어 박서보 묘법의 반세기에 걸친 진화적 발자취를 추적할 수 있으며, 특히 말년에 이르러 찬란한 자연의 색을 전면 수용한 색채 한지 묘법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아울러 미술관 인근 박서보재단 로비층의 26SQM에서는 두 작가의 작업과 활동을 기록한 흑백 사진들을 소개해 깊은 감상의 고리를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전시의 최종 정착지인 3층 SPACE 3은 반투명 유리를 통해 은은하게 부서져 들어오는 자연광이 극대화된 높이 8미터의 정방형 ‘큐브’ 공간이다. 이곳에는 박서보 화백이 별세한 2023년에 제작한 330×192cm 규격의 대형 백색 묘법 3점이 걸려 있다.
외부 보도에 따르면 이 작품들에는 작가의 서명이 남아 있지 않으며, 박서보 화백은 생전에 미술관이 세워지면 이 세 작품을 함께 걸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관람객의 섬세한 발걸음과 빛의 조도 변화에 따라 한지 표면의 회백색 입자들이 시시각각 다르게 일렁이며, 감상의 영역을 시각적 평면에서 촉각적이고 입체적인 공간으로 승화시킨다.

조선 백자와 프랑스 눈의 만남, 같은 백색 회화가 품은 서로 다른 삶의 기억
특히 전시장 3층에서 대조되는 두 작가의 백색 회화는 동일한 하얀 색감 속에 각자의 인생 경로와 시공간적 기억이 어떻게 내장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서보재단은 박서보의 흰색을 조선 백자의 회백빛과 삼베처럼 누르스름한 자연의 흰색에 비유한다. 흐엉 도딘의 흰색은 프랑스로 이주한 뒤 처음 마주한 눈과, 눈이 녹으며 드러난 빛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같은 흰색이지만 두 작가의 화면에는 서로 다른 문화적 기억과 개인의 이동 경로가 들어 있는 셈이다.
박서보의 흰색이 한국적 재료와 자연의 빛을 되찾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흐엉 도딘의 흰색은 이주 이후 마주한 첫눈과 그 아래 잠겨 있던 빛의 기억에 닿아 있다.
전시는 단순히 동양적인 참선이나 명상이라는 공통적 프레임으로 이들의 작품을 뭉뚱그려 해석하는 관성에서 탈피한다. 대신 같은 색의 조형이 작가 각자가 지나온 독특한 생의 이주 역사와 자연에 대한 개별적 기억에 따라 얼마나 다른 질감과 영혼을 간직하게 되는지를 미학적으로 대비한다.
미술관의 진짜 시험대, '플랫폼'의 선언은 다음 전시부터 검증된다
이번 개관전은 두 작가의 역사적 교감과 공명이라는 서사적 접점을 보여주며 박서보미술관의 출범을 알리는 가장 우아한 실천이다. 그러나 미술관이 표방한 ‘글로벌 현대미술의 핵심 거점’이라는 비전이 한낱 수사적 슬로건으로 퇴색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더 과감하고 입체적인 조율이 요구된다.
박서보의 예술 미학과 조화롭게 호흡하는 작가들을 초대해 안온한 시각적 균형을 지키는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의 단색화가 가졌던 미술사적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급진적인 현대 작가의 실험을 품어내거나, 그의 유산과 팽팽한 미학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목소리까지도 대담하게 끌어안을 수 있어야만 미술관은 온전한 ‘생동하는 플랫폼’으로 완성될 수 있다.
미술관의 성공적인 자리매김은 박서보라는 거장의 권위를 완고하게 수호하는 방어적 기념비가 아니라, 그의 개방적인 예술 정신을 디딤돌 삼아 앞으로 우리 미술 생태계에 얼마나 날카롭고 유의미한 동시대적 예술 질문들을 던져올 수 있느냐에 달렸다.
이제 관람객이 직접 확인할 차례다. 선을 긋고 색을 쌓아 올린 두 작가의 ‘비움’이 연희동의 빛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충만한 회화로 되살아나는지, 박서보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에 잠시 머물며 화면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빛의 미세한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비워낸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어진 회화의 울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FAQ
Q : 기존의 박서보재단 기지 공간과 이번에 개관하는 박서보미술관은 같은 곳인가?
A : 주소와 공간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박서보재단 사무국이 위치한 기지(GIZI) 건물은 연희로24길 9-2에 위치하고 있으며, 새로이 개관하여 일반 관람을 개시하는 박서보미술관은 연희로24길 9-54에 자리하고 있다. 두 공간의 입장 방식과 도슨트 참여 범위가 다르므로 방문 전 주소를 정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Q : 미술관을 방문할 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는가?
A : 박서보미술관 공식 안내에는 관람객 주차장 정보가 별도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도로 폭이 좁고 주택이 밀집한 연희동의 특성을 고려해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며, 차량을 이용할 경우 방문 전 미술관에 확인하거나 주변의 유료 공영 주차장 정보를 개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Q : 전시를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 즉시 관람할 수 있는가?
A : 현재 공식 안내에는 일반 관람의 사전 예약 필수 여부가 별도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원활한 관람을 위해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운영 방식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Q : 전시를 설명해 주는 전문 도슨트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A :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도슨트 전시 해설 투어는 별도의 예약 없이 현장 참여 방식으로 운영된다. 평일(화~금요일)은 오후 2시에 1회 진행되며, 주말(토·일요일)에는 오후 2시와 오후 4시에 각각 진행된다.
Q : 개관 기념 대중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은 어떻게 참여하나?
A : 뮤지션 요조가 지도하는 글쓰기 수업 '쓰기와 채움' 및 진수영 아티스트의 싱잉볼 명상 드로잉 워크숍 '그리기와 비움'이 9월부터 순차적으로 개최된다. 해당 프로그램의 세부 일정과 신청 방식, 잔여석 여부는 박서보미술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고 예약해야 참여할 수 있다.
[전시 상세 정보]
▪️ 전시 기획명: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 (Park Seo-Bo & Huong Dodinh: Emptiness Fullness)
▪️ 전시 일정: 2026년 8월 21일(금) ~ 2027년 1월 3일(일)
▪️ 전시 장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박서보미술관 전관 (작품 전시는 지하 2층 SPACE Ø, 2층 SPACE 2, 3층 SPACE 3에서 진행되며 1층 SPACE 1은 커뮤니티 및 프로그램 공간으로 운영. 박서보재단 로비층 26SQM에서도 전시가 연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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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청 작가: 박서보, 흐엉 도딘
▪️ 출품작 규모: 회화 총 42점 (박서보 25점, 흐엉 도딘 17점) 및 미디어 아카이브, 흑백 기록 사진 다수
▪️ 관람 요금: 일반 5,000원 (0세 ~ 7세 미만 영유아 및 아동은 증빙서 지참 시 무료)
▪️ 미술관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24길 9-54 (우편번호 03723)
▪️ 개관 시간: 매주 화요일 ~ 일요일, 오전 11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매년 신정 및 설날·추석 당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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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최/주관: 박서보미술관
▪️ 공식 후원: 주한 프랑스 대사관 문화과
▪️ 대표 문의처: 박서보미술관 학예과
[아티스트 소개: 박서보]
박서보(1931~2023)는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화면과 자아를 비워내는 회화를 평생 탐구했다. 전후 앵포르멜 경향의 작업에서 출발한 그는 1967년부터 ‘묘법(Ecriture)’ 연작을 전개하며 젖은 한지 위에 선을 반복해서 긋고 밀어내는 수행적 작업을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선은 단순한 조형 요소를 넘어 시간과 행위의 흔적이 됐다. 박서보는 《에꼴 드 서울》과 《앙데팡당》 등 주요 전시를 이끌며 한국 현대미술의 제도적 기반을 확장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리움미술관·테이트 모던·퐁피두센터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2011년 은관문화훈장,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아티스트 소개: 흐엉 도딘]
흐엉 도딘(1945~)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다.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뒤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으며, 베트남과 프랑스라는 두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빛·공간·균형·내면의 질서를 탐구해왔다. 선과 원 등 절제된 기하학적 형태를 활용하고, 광물 안료를 수십 겹 쌓아 화면 안쪽에서 빛이 발현되는 듯한 깊이를 만든다.
파리 국립 아시아 미술관 기메와 베네치아 코레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23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했다. 1981년 칸 국제회화대상에서 1등상을 받았으며, 1996년 프랑스 공로훈장과 예술 관련 훈장을 받았다.
[전문 용어 사전]
▪️ 단색화(Dansaekhwa): 1970년대 후반부터 한국 현대미술계를 주도한 사조로, 단일한 색채와 반복적인 신체 행위를 통해 정신적 수행의 과정을 화면에 담아내는 한국의 독창적인 추상회화 양식이다.
▪️ 묘법(Ecriture): 물에 적신 한지를 화면에 겹겹이 얹은 뒤 연필이나 도구로 선을 반복해서 긋고 한지를 밀어내는 행위를 통해 시간과 호흡을 남기는 기법이다.
▪️ 광물 안료(Mineral Pigment): 자연의 돌이나 광석을 미세하게 갈아 만든 천연 채료로, 흐엉 도딘 작가가 캔버스 위에 수십 겹 얇게 쌓아 올려 깊이 있는 빛을 발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매체다.
▪️ 큐브(CUBE): 박서보미술관 3층에 위치한 8미터 높이의 정방형 전시 공간으로, 천장과 벽면의 반투명 유리를 통과한 자연광이 작품과 조화를 이루어 감상의 몰입을 돕는다.
▪️ 26SQM: 박서보미술관 인근 박서보재단 로비층에 위치한 공간으로, 이번 개관전에서는 두 거장의 작업과 활동을 기록한 흑백 사진들을 아울러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