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erere mei, Deus.”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음악은 때때로 첫마디만으로 공간의 공기를 바꿔놓는다.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의 〈Miserere mei, Deus〉가 그렇다. 화려한 오케스트라도, 웅장한 타악기도 없다. 인간의 목소리만이 고요한 공간을 가르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이 경건한 음악에는 음악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둑질’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도둑은 겨우 14세 소년 모차르트였다. 그가 훔친 것은 보석도 금화도 아니었다. 음악이었다.
알레그리는 로마에서 활동한 작곡가이자 성직자였다. 그의 〈Miserere〉는 시편 51편, 가톨릭의 전통적 번호로는 시편 50편의 라틴어 가사에 곡을 붙인 작품으로, 우르바노 8세가 교황이던 1630년대에 작곡되어 시스티나 성당의 성주간 전례, 그 중에서도 테네브레 전례를 위해 쓰였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시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와 정화를 구하는 참회의 기도다. 따라서 〈Miserere〉의 핵심은 슬픔 그 자체가 아니다. 잘못을 깨달은 인간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자비를 청하는 것이다.
이 곡은 특히 시스티나 성당의 전례와 결합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18~19세기에는 유럽 각지의 여행자들이 성주간에 로마를 찾아 이 음악을 들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명성에는 한 가지 엄격한 규칙이 따라붙었다. 교황청은 이 악보를 성당 밖으로 가지고 나가거나 베끼는 것을 금지했고, 이를 어기는 성가대원은 파문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후대에 지어진 낭설이 아니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연주자들은 이 곡의 어떤 부분도 가지고 나가거나 베끼거나 남에게 주는 것을 파문의 위협 아래 금지당하고 있다”고 직접 적어 놓았다.

1770년 4월, 아버지 레오폴트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14세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로마에 도착했다. 모차르트 부자는 성주간의 시스티나 성당을 찾아 〈Miserere〉를 들었다. 레오폴트가 4월 14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들이 수요일과 목요일 시스티나 성당에서 이 곡을 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서 전설이 시작된다. 소년 모차르트는 이 음악을 듣고 숙소로 돌아와 기억만으로 악보를 받아 적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다시 성당을 찾아 연주를 들으며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고 수정했다는 것이다. 이어폰도 녹음기도 없이, 눈앞에 악보 한 장 없이, 한 번 들은 복잡한 다성음악을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숙소에서 여러 성부의 음을 다시 종이 위에 펼쳐 놓았다는 이야기다. 사실이라면 ‘천재’라는 두 글자로도 설명하기 부족한 능력이다.
하지만 여기서 음악사는 전설과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 이 일화의 유일한 동시대 근거는 방금 인용한 레오폴트의 편지뿐이며, 정작 모차르트가 그때 적었다는 악보 원본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게다가 모차르트는 그보다 앞서 런던 체류 시절 이미 이 곡의 사본을 접했을 가능성, 로마로 오는 길에 대위법의 대가 파드레 마르티니와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파문의 위협을 무릅쓴 극비 악보를 단 한 번에 완벽히 훔쳐냈다”는 식의 극적인 이야기는 후대에 다소 부풀려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다고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그가 음악을 단순히 ‘들었던’ 것이 아니라 구조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에게 음악은 흘러가면 사라지는 소리다. 그러나 모차르트에게 음악은 머릿속에서 성부별로 분해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하나의 건축물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음악을 들었지만, 모차르트는 음악의 구조를 보았던 것이다.
〈Miserere〉를 처음 듣는 사람도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 고요하게 이어지던 합창 위로 소프라노가 갑자기 하늘을 뚫을 듯 높은 음역까지 치솟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이 이 순간을 두고 “이것이 알레그리가 만든 천상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유명한 고음이 알레그리가 17세기에 처음 적어놓은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곡은 수백 년 동안 시스티나 성당의 장식적 연주 전통, 전조와 필사, 편집을 거치며 변화했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 특히 그 유명한 고음이 포함된 형태에는 19세기 이후의 전승 과정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최근의 대체적인 학설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듣는 〈Miserere〉는 알레그리 한 사람의 작품인 동시에,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음악에 덧붙여온 기억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 흥미로운 것은 모차르트 역시 그해 〈Miserere in A minor, K.85〉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이 곡은 1770년 여름 볼로냐에서 작곡되었는데, 당시 모차르트는 그 곳에서 대위법의 대가 파드레 마르티니에게 배우며 stile antico, 즉 전통적인 엄격 대위법을 익히고 있었다. K.85는 그 학습의 흔적에 가깝다. 그래서 두 〈Miserere〉를 연이어 들어보면 재미있다. 알레그리에서는 공간과 울림, 장식된 인간의 목소리가 신비로운 세계를 만든다. 모차르트에서는 여러 성부가 질서 있게 얽히며 젊은 천재가 익히고 있던 오래된 교회음악의 문법을 보여준다. 알레그리의 〈Miserere〉가 ‘자비를 갈구하는 공간’이라면, 모차르트의 〈Miserere〉는 ‘자비를 구하는 질서’라고 해도 좋겠다.
그러나 〈Miserere〉의 가장 깊은 곳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도, 바티칸의 규칙도, 높은 음도 없다. 단 하나의 단어가 있다.
Miserere.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말이 거의 2천 년 가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온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잘못 판단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욕심을 부리고, 때로는 자신에게 조차 부끄러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만이 아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자비다. 그래서 Miserere는 약한 사람이 강한 존재 앞에서 비굴하게 용서를 비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이 비로소 말할 수 있는 용감한 문장이다.
“Miserere mei, Deus.”
나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알레그리의 음악이 40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 오늘날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