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AI 활용 교육에 왜 그림일기가 필요했을까
▪️ 목적과 결과물의 순서가 뒤바뀔 때
▪️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 배운 내용을 책 모양으로 포장하는 일
▪️ 아이의 한 시간에는 어른의 책임이 따른다
▪️ [부모와 교사를 위한 질문]
▪️ [전문 용어 사전]
▪️ [칼럼니스트 소개]
▪️ [같이 읽으면 좋을 기사]

전시할 결과물은 이미 교실 벽을 가득 채웠는데 정작 아이는 공책 첫 줄에서 멈춰 있는 장면으로, 결과물이 먼저 정해진 수업의 순서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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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활용 교육에 왜 그림일기가 필요했을까
교육부가 추진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전담하는 '2026 디지털새싹' 사업이 올해 267종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중 SK텔레콤과 순천향대학교가 강원·충청권 초·중·고교생 약 4,200명을 대상으로 지난 5월부터 진행하는 과정에 'AI 그림일기'가 있다.
수업의 순서는 이렇다. 학생은 먼저 전용 워크북을 펴고 일기의 주제와 장면을 손으로 구상한다. 그렇게 쓴 글을 AI가 네 개 장면의 이미지와 음성 내레이션으로 구현한다. 학생은 그 결과물을 보고 제목과 설명, 대사를 고치거나 이미지를 다시 생성한다. 2학기에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AI와 함께 읽고 쓰는 세상' 과정도 운영될 예정이다. 사업 주체는 이 과정에서 학생의 문해력과 표현력이 자란다고 설명한다.
AI가 곧바로 대신 써주지 않도록 종이를 먼저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설계는 세심해 보인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순서를 거꾸로 짚어보면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이 수업의 목적은 처음부터 AI 활용 교육이었다.
그렇다면 AI 활용 교육에 왜 그림일기가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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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결과물의 순서가 뒤바뀔 때
생성형 AI로 이미지와 음성, 영상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목표라면 그 기술을 제대로 가르치면 된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는지, AI가 내 말을 어디서 오해하는지, 만들어진 결과를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그것만 다뤄도 한 학기가 모자란다.
그런데 'AI로 4컷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한 문장은 교육 프로그램의 성과로 내놓기에 어딘가 허전하다. 여기에 그림일기가 들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문해력, 표현력, 손글씨, 자기표현 같은 교육적 명분이 한꺼번에 따라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기가 원래 어떤 글인가 하는 점이다.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하루를 되짚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붙들어보고,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 언어를 시험해보는 기록이다. 그런데 그 글이 이미지와 음성으로 바뀌는 순간 성격이 달라진다. 교사와 학부모, 사업을 평가하는 사람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산출물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AI가 자기 글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견주어 보고, 어긋난 부분을 찾아 문장을 다시 고치는 수업이라면 의미가 있다. 다만 학생이 실제로 원문을 얼마나 고쳐 썼는지, 문해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사전·사후 평가나 비교 자료는 현재 공개되어 있지 않다. 지금 확인되는 것은 프로그램의 기능과 취지뿐이다.
필자에게 이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AI가 없던 시절에도 교육 현장에서 같은 구조를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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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25년 동안 아이들과 이야기를 쓰고 스토리 팝업북을 만들어왔다. 첫 수업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른 아이들이 만든 완성책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잘 만든 작품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희 머릿속에 든 생각 하나가 이런 책이 된다는 도착 지점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반응은 대체로 두 갈래로 갈린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와, 너무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두 가지만 믿고 시작하자. 첫째는 선생님을 믿는 것, 둘째는 너 자신을 믿는 것. 누구든지 자기 이야기는 책이 될 수 있으니까. 도착 지점에 깃발을 먼저 꽂아두면 아이는 자신이 없어도 일단 시작한다. 걱정할 틈 없이 즐겁게 출발하게 하는 것, 그것이 첫 시간에 해야 할 일의 거의 전부다.
그다음부터 알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자기 생각을 꺼내 글로 쓰는 일과 그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하는 일은 이어져 있지만 엄연히 다른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디어 하나를 이야기로 키우는 데만도 아이는 상당한 에너지를 쓴다. 그것을 다시 읽고, 장면을 고르고, 완성지에 옮겨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의 구조까지 맞추는 데는 또 다른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수업을 두세 차시로 나눴다. 초안을 쓴 뒤 자기 글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틈을 주기 위해서다. 다음 시간 완성책에 옮겨 적으며 아이는 빠뜨린 장면을 발견하고 어색한 문장을 스스로 고친다. 누가 고치라고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한 차시 안에 모두 끝내야 할 때는 설계가 더 까다로웠다. 첫 아이디어를 촉발할 만한 단순한 책 모형이나 팝업 하나를 고르고, 창작과 직접 관계없는 과정은 최대한 줄였다. 아이마다 속도와 수준이 다르니 누가 지쳤는지, 누가 이야기를 조금 더 따라가고 싶은지 살피며 완급을 조절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었다.
완성책에 쓸 종이도 아무거나 고르지 않았다. 여러 번 쓰고 지워도 보풀이 일지 않고, 색연필의 발색이 살아나고, 오래 견디는 종이를 골랐다. 그 책은 수업이 끝나고 사진 한 장 찍고 나면 사라질 결과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초안을 다시 옮겨 써야 한다는 말에 좀처럼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첫 시간에 본 그 책을 이미 머릿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근사하게 접힌 완성지가 놓이는 순간 표정부터 달라진다. 첫 번째 글이 생각을 꺼내는 작업이었다면, 두 번째 글은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는 작업이 된다.
다 만들고 나면 되도록 발표하고 자랑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늘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지금의 너를 기억하게 해줄 중요한 기록이니 평생 간직하라고. 실제로 어른이 된 뒤에도 그 책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가 직접 그리고 쓴 손그림 책과 같은 이야기를 AI가 만든 4컷 출력물을 나란히 놓아, 아이에게 오래 남는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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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내용을 책 모양으로 포장하는 일
반대의 장면도 그만큼 많이 보았다. 독서논술이나 역사 수업을 마친 뒤 책 만들기를 붙이는 수업이다. 원래 목적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 혹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업을 맡긴 기관이나 학부모에게 보여줄 무언가가 필요해지면서 마지막에 책 만들기가 들어온다.
역사를 이해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내용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까지 만들어야 한다. 과부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미리 인쇄한 자료를 나눠주고 몇 줄 옮겨 적게 한다. 이야기와 아무 상관 없는 팝업을 끼워 넣고 진한 색지에 그림을 오려 붙이면, 멀리서 보기에는 그럴듯한 작품이 완성된다. 가수가 노래를 익히기도 바쁜데 같은 시간에 춤과 연기까지 해내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책 모형이 있다고 책 만들기 교육이 되지는 않는다. 배운 내용을 책 모양으로 포장한 것에 가깝다. 더 뼈아픈 것은 그렇게 급히 끝낸 결과물을 아이들이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랑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완성되는 순간에는 화려하지만 그 안에 자기가 들인 시간과 판단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AI 활용 교육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독서와 역사 뒤에 팝업북이 붙었다면, 이제는 손으로 쓴 글 뒤에 AI 이미지와 음성과 4컷 콘텐츠가 붙는다. 도구가 화려해진 만큼 눈에는 훨씬 잘 띈다. 그러나 눈에 잘 보인다는 사실과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다.
AI 활용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순서가 문제다. 먼저 정해야 할 것은 'AI로 무엇을 만들까'가 아니라 '이 아이가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다. 보여줄 결과물을 먼저 정해두고 거기에 아이의 글쓰기와 생각을 끌어다 쓰기 시작하면, 수업의 주어는 어느새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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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한 시간에는 어른의 책임이 따른다
어른은 필요 없다고 판단한 강의를 듣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이들은 다르다. 학교와 학원, 도서관, 공공기관과 기업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부모와 교사의 선택으로 들어간다. 이 활동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따져보고 거절할 권한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아이를 대상으로 수업을 기획하는 사람에게는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한 번의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벅찬 글쓰기 수업 한 번으로 아이는 나는 글을 못 쓴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복잡한 결과물을 만들다 지친 아이는 책 만들기는 어려워서 나는 못 한다고 단정할 수 있다. 역사 시간이 힘든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독후 결과물을 완성하느라 지쳐 책 자체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교육에는 중립적인 실패가 거의 없다. 한 번의 경험이 다음 배움을 열기도 하고 막아버리기도 한다.
반대의 일도 일어난다. 단 한 번의 수업에서 언뜻 떠오른 생각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자기 이름을 단 한 권의 책이 되는 경험을 한 아이는 글쓰기와 상상하는 즐거움을 평생 품고 산다.
2학기에는 특수교육 대상 학생을 위한 과정이 새로 열린다고 한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가 자기 경험을 이미지와 음성으로 확인하는 일에는 분명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 가능성은 AI가 무엇을 만들어냈는가가 아니라, 그 아이가 자기 생각을 얼마나 더 정확하게 갖게 되었는가로 확인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시간과 노력은 어른들의 사업 성과나 홍보를 위해 꺼내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얼마나 많이 경험시켰는가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오늘 우리가 아이에게 시키는 이 활동은, 그 아이의 귀중한 한 시간을 써도 좋을 만큼 정말 가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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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교사를 위한 질문]
Q. 우리 아이가 듣는 AI 활용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
A. 결과물이 아니라 아이가 처음 쓴 글을 보면 된다. 첫 문장과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왜 고쳤는지를 아이가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을 말하지 못한다면 그 시간에 바뀐 것은 아이의 생각이 아니라 이미지뿐일 수 있다.
Q. 결과물이 화려하면 잘 배운 것인가?
A. 화려함은 교육적 필요의 증거가 아니다. 어른이 보기 좋은 결과물과 아이에게 남는 결과물은 다르다. 몇 달이 지난 뒤에도 아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가 더 정확한 기준이다.
Q. 아이가 재미있었다고 하면 좋은 수업 아닌가?
A. 재미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되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신나서 말한다면 창작이 일어난 것이고, 도구와 기능만 이야기한다면 체험에 가깝다.
Q. 그렇다면 아이에게 AI를 아예 쓰지 못하게 해야 하나?
A. 그렇지 않다. 순서의 문제다. 아이가 자기 힘으로 생각을 꺼내본 다음이라면 AI는 표현을 넓히는 도구가 된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AI로 무엇을 만들까'가 아니라 '이 아이가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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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용어 사전]
▪️ 디지털새싹: 교육부가 추진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전담하는 초·중·고 학생 대상 AI·디지털 교육 사업. 2026년에는 267종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AI 그림일기: 학생이 쓴 글을 생성형 AI가 네 개 장면의 이미지와 음성 내레이션으로 구현하고, 학생이 제목과 설명, 대사를 수정하거나 이미지를 다시 생성하도록 설계된 교육용 프로그램.
▪️ AI 교육과 AI 활용 교육: AI의 원리와 구조를 배우는 것이 'AI 교육'이라면, AI 도구를 사용해 글과 이미지, 음성을 만들어보는 것은 'AI 활용 교육'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도구를 써봤다는 사실이 교육 성과로 오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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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책마법사(최상희)는 상상하는 인간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스토리 아티스트이자 언론인이다. 2001년부터 아날로그 창작 교육과 북아트를 통해 상상력의 가치를 탐구해 왔으며, 2023년부터는 생성형 AI와 새로운 창작 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인터넷 신문 The Imaginary Pocus를 창간해 '상상하는 인간 중심 저널리즘'을 바탕으로 인간의 상상력과 창작,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기록하며 시사와 문화, 기술을 잇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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